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군사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데 대해서는 이 정도로 끝맺고 평화적인 이용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최근 비둘기의 '직업'에 새롭고도 중요한 것이 추가되었다. 제품의 품질을 관리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계기에서 비롯되었다. 미국의 어느 전자기기 제조업체가 만든 고가의 전자장치가 어떻게 된 일인지 곧 고장이 나버렸다. 그러나 주문한 상대방은 화를 내며 보상을 요구했다. 원인을 따져 보았더니 어느 부품의 피복에 육안으로는 전혀 식별이 불가능한 배우 작은 균열이 생겨서 고장 난 것으로 판명됐다. 그 결과 회사의 간부진은 동물심리학자에게 상담을 의뢰했다.
이윽고 문제의 부품을 나르는 콘베이어 곁에 훈련받은 비둘기를 집어넣은 바구니가 놓였다. 그 바구니 속에는 신호장치와 연결된 두장의 유리판이 있다. 비둘기는 눈앞에 있는 컨베이어 위를 흘러가는 부품을 보고서 품질이 좋으면 '합격'이라는 신호를 나타내는 유리판을 부리로 쪼고, 기준에 조금이라도 틀리면 '불량품'이라는 신호를 나타내는 유리판을 쫀다. 이 실험을 수백 번이나 반복해서 했다. 물론 불량품을 찾아낸 경우에는 포상으로 옥수수 알맹이를 주었다. 처음에 비둘기는 눈에 띄는 불량품만을 선별했다. 그러나 실험이 끝나갈 무렵에는 인간의 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한 불량품을 가려내게 되었다. 훈련시간은 '학생'의 능력에 따라 다르지만 50-60시간이 보통인데 못 보고 빠뜨리는 불량품은 전체 불량품의 1% 정도라는 성적을 올렸다.
비둘기를 제품의 품질관리에 이용하려는 시도가 소련에서도 모스크바의 기계제작 공장에서 있었다. 그것은 볼 베어링의 볼을 검사하는 일이다. 이러한 책임 있는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비둘기를 교육한 기술자는 미국과 똑같은 장치를 만들었다. 그렇지만 전혀 경험이 없는 일인데다가 민감한 비둘기라는 살아 있는 생물을 상대로 하는 이 품질관리 시스템을 잘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상당한 고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비둘기는 빛을 싫어하기도 하고 포상으로 준 먹이를 먹이통에서 꺼내 먹는 것을 싫어하기도 앴다. 또 비둘기가 쪼는 힘에 강약이 있었으므로 점점 스프링을 적당히 조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도 가까스로 목적한 대로 잘 되어서 비둘기는 볼 베어링의 볼의 좋고 나쁨을 식별할 수 있데 되었다.
그런데 2일째에는 모든 볼을 불량품으로 가려내는 뜻밖의 사태가 일어났다. 포상으로 먹이를 준다거나 조명을 개량해 보아도 효과가 없었다. 원인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비둘기는 번쩍번쩍하게 연마된 볼 표면에 묻어 있는 인간의 지문 흔적을 식별하여 그 볼을 불량품으로 가려냈던 것이다. 그래서 볼에 묻은 지문 흔적을 닦았더니 비둘기는 다시 정상적인 검사를 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비둘기는 불량품을 골라내야만 먹이를 받게 되는데 더 많이 먹이를 받으려고 '속임수'를 쓰기도 한다는 것이다.
비둘기를 제품의 품질관리에 이용한 소련의 기술자의 경험에 의하면 처음의 훈련은 3-5일을 필요로 하는데, 2-3주간 뒤에는 이미 비둘기는 숙련된 검사원이 되어 제품의 흠이 적으면 적을수록 더욱 주의를 기울인다.
육안으로 하는 면밀한 품질검사가 필요한 경우에는 비둘기를 이용한 품질관리가 모든 점에서 인간이나 자동장치를 사용한 검사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은 발할 필요도 없다. 현재 공업의 각 분야에는 몇만, 혹은 몇십만 이라는 숫자의 인간이 이 품질검사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노동을 하고 있다고 할 수는 있지만, 자기 자신이 제품을 만든다고는 할 수 없다. 품질관리용의 자동장치를 완비하려면 많은 시간과 돈이 들고 그 결과 제품의 단가가 올라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갈라진 틈, 튀어나온 부분, 긁힌 자국, 기타 손상된 불량품을 골라낼 수 있는 만능 자동 검사장치를 제작한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이러한 자동장치를 만들려면 필히 고급의 광학장치를 만들어서 도형을 식별하는 일을 이 장치에게 철저하게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현재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생겨난 과학의 새로운 분야, 기계, 동물, 사회 등에 나타난 제어와 통신의 유사성을 찾아내서 인공두뇌의 실현과 오토메니션의 개량을 지향하는 것)가 직면해 있는 가장 곤란한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서 비둘기의 시각기관은 대단한 선택능력을 갖고 있다. 비둘기는 어떤 형태의 손상을 검사하다가 다른 형태의 손상을 검사하는 데로 단시간 동안에 쉽게 전환할 수 있다. 이런 전환에 들어가는 재교육은 2-3시간이면 충분하다. 게다가 비둘기는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작업을 할 수도 있고, 그동안에 피로하다는 징후도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검사도 소홀히 하는 법이 없다. 비둘기를 이용한 제품의 품질관리를 채용하면, 공장은 짧은 기간 동안에 검사의 질을 현저하게 높일 수가 있다. 이 방법은 전자장치, 계기, 기계, 등의 제작부문, 통조림 공장, 과일이나 야채의 선별, 혹은 은행 등에서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손 타이머 박사는 비둘기에게 문자를 가르치는 실험을 실시하였다. 즉 26마리의 비둘기에게 각각 로마자의 알파벳을 하나만 기억시켰다. 이 한 조 26마리의 비둘기를 주요 은행의 지점에 배치한다. 수표를 받을 비둘기는 거기에 사인한 사람의 성을 '읽고서' 특수한 자동장치의 알파벳 키를 그 순서대로 부리로 쫀다. 그 일이 끝나면 자동장치는 돈을 지불하기 위해 수표를 자동식 회계로 보낸다.
이와 똑 같은 방식으로 한다면 비둘기를 우편물 선별에도 이용할 수 있다. 즉 컨베이어 옆에 26마리의 비둘기를 배치한다. 각각의 비둘기에게는 알파벳의 어느 한 분자만을 기억시켜 놓는다. 예를 들어 L이라는 문자를 기억한 비둘기는 L(혹은 배달 지구 기호)을 보면 키를 쫀다. 그렇게 하면 투하 장치의 접점이 닫히고 그 편지는 해당되는 장소에 들어간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전혀 다른 여러 가지 필적으로 쓰여진 문자나 숫자를 식별할 수 있도록 비둘기를 훈련시켜야 한다. 그렇지만 이 훈련도 전연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비둘기는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제품의 흠집조차도 식별해 내기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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